암세포를 만드는 바이러스들, 그리고 SV40 이야기

암세포를 만드는 바이러스들, 그리고 SV40 이야기

HPV, EBV, 간염 바이러스 등 다양한 종양 바이러스의 작동 방식을 간략히 살펴보고, 그중에서도 SV40이 p53과 Rb를 통해 암의 비밀을 푸는 결정적 단서가 된 과정을 추적합니다.

암세포를 만드는 바이러스?!

암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다름아닌 바이러스다. 물론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바이러스가 암을 일으키는 경우를 잘 알고 있다. 신경을 잘 쓰지 않을 뿐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alpha-HPV, α-Human Papillomavirus) 다. 이외에도 최근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인유두종 바이러스와 유사한 beta-HPV은 피부암, 특히 Cutaneous squamous-cell carcinoma (SCC) 발생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1 이 뿐만이 아니다.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 Epstein-Barr virus), HTLV-1 (Human T-cell lymphotropic virus type 1), KSHV (Kaposi's sarcoma-associated herpesvirus) 등의 바이러스가 직접적으로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바이러스들은 매우 당연하게도 인간에게서만 확인된 바이러스들로, 학계에서는 이런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특별히 Oncovirus 라고 부른다. 학계에서는 이 Onco라는 접두어를 암-유발 이라는 의미로 쓴다. 토막 상식이지만 Oncogene은 암 유발 유전자, Oncoprotein은 암 유발에 기여하는 단백질이다. 유사하게 carcino- 라는 접두어도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HPV 바이러스의 실제 모습 (TEM 촬영)
HPV 바이러스의 실제 모습, TEM 촬영
출처: Laboratory of Tumor Virus Biology - NIH-Visuals Online# AV-8610-3067

그러면 대체 암 유발 바이러스는 얼마나 위험한건데요?

암 유발 바이러스, Oncovirus가 실제로 대체 얼마나 위험한걸까? 이 바이러스에 걸리게 되면 이곳저곳 다 암에 걸려버리는 것일까? 이 암 유발 바이러스들은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걸까? Oncogenic Viruses, 2023라는 교과서에서는 세계적으로 따지면 약 15~20% 정도의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암이 oncovirus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기술하였다.2

세계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걸러들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의료기술, 위생이 떨어지는 곳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이로인해 평균치가 확 틀어지기 때문이다. 진짜인지는 출처를 따로 밝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기여도가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방금 분명히 필자가 사람에게서만 확인된 바이러스들이라고 했다. 그렇다. 다른 동물들도 암에 걸리고 그들에게 암을 유발시키는 바이러스들도 당연히 있다! 이번 포스트의 주인공 SV40 (Simian Virus 40)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장류와 SV40 바이러스의 모습. 3D 개체
SV40 바이러스의 풀네임은 Simian virus 40 혹은 simian vacuolating virus 40이다.
여기서 Simian은 영장류를 뜻한다.

세기의 발견인가, 재앙의 시작인가: 소아마비 백신 속 불청객

전설의 SV40 바이러스는 현대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일으킨 기가막힌 주축 중 하나이다. 이 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왜 생명과학에 기여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SV40 바이러스를 발견하게 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는 인류가 소아마비라는 공포와 싸우던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소아마비 백신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 바이러스는 스스로는 증식하지 못하는 생물과 무생물 그 사이 무언가이다. 바이러스의 특징 중 하나는 증식을 위해서는 숙주 세포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에게 감염되는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는 세포를 구해다가 이것에 강제로 소아마비 유발 바이러스를 감염시켜야만 백신 개발이 가능한 것이다.

당시에는 약독화 백신(attenuated vaccine) 제조를 진행했는데 이것은 바이러스를 무지막지하게 만들어낸뒤 병원성(병을 일으키는 정도)이 좀 떨어져버린 바이러스를 주입해서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이다.3 재밌게도 바이러스는 제대로된 숙주가 아닌 곳에서 증식을 거듭하면 점점 병원성이 떨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

여기서 과학자들은 한 가지 딜레마에 빠진다. 당시에는 무한히 증식하는 인간 암세포(헬라 세포, HeLa)도 있었지만 암세포를 이용해 만든 백신이 혹시라도 암을 옮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그래서 선택한 대안이 바로 동물에게서 막 채취한 1차 세포(Primary cell)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소아마비 바이러스의 숙주가 영장류였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배양 세포는 단연 원숭이의 세포였다. 특히 신장은 세포가 많고 분열이 활발하여 배양하기 용이해 붉은털원숭이의 신장 세포가 최종적인 바이러스 농장으로 선택되었다.

인간의 백신 개발을 위해서 신장 세포를 기꺼이 제공해준 우리 레서스 원숭이를 위해 묵념의 시간을 갖자.
출처: UnsplashYeh Xintong

어라? 박사님… 저희 망한 것 같습니다.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 SV40의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소아마비 백신 이야기가 나오니 조금 의아하지 않은가? 하지만 걱정하지마라 이제 클라이막스에 도달했다. 당시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과학자 베르니스 에디(Bernice Eddy) 는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연구하던 전문가였다. 이 소아마비 백신에서 불활성화한 바이러스 백신이라고 유통되는 것 중에 바이러스가 감염능력 및 병원성을 유지하고 있는 백신들이 있다는 것을 고발했던 NIH 계의 레전드 사건의 주인공이신 분이다.

불활성화 백신은 특수한 화학처리를 통해 아예 감염 자체가 되지 않는 녀석들이다. 실제 개발은 약독화 백신1961년이고 불활성화 백신1955년으로, 불활성화 백신이 먼저 개발 되었지만 에디는 그 공정 실수에서의 치명적인 오류를 고발한 것이었다.
경악스럽게도 당시 에디가 고발한 것은 묵살 되어서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이게 맞나? 싶은 그 시절 NIH…4

그는 백신의 안전성을 테스트 하기 위해서 여러 실험을 하던 중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 때 사용하던 원숭이 신장 세포를 곱게 갈아서 만든 세포 추출물(Cell Extracts)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포 추출물을 주입한 햄스터 154마리 중 109마리에게서 암이 발생했던 것5. 소름이 돋는다… 분명히 이 원숭이 신장 세포에 무언가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있다는 강력한 신호였다.

베르니스 에디 누님. 얼레벌레 돌아가는 우당탕탕 NIH를 보고 얼마나 깊은 분노를 느끼셨을까...
By JamesZhou13 - File:NIH-Division-of-Biologics-Control.jpg,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8436668

에디는 이 위험성을 끈질기게 경고했지만,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대체 어째서 아무도 주목을 안 하지? 그러던 중, 머크 연구소의 모리스 힐먼(Maurice Hilleman)벤자민 스위트(Benjamin Sweet) 팀이 에디의 연구를 재현하던 과정에서 마침내 그 암 유발 물질의 정체를 밝혀낸다. 바로 원숭이 세포에 잠복해 있던 새로운 바이러스, SV40 이었다.

진짜 골때리는게 이 SV40라는 암 유발 바이러스는 아이러니하게 원숭이 신장 세포에서 암을 유발하지 않는다.
당시 백신에 섞였던 SV40도 추적 연구 끝에 인간에게서 암 발병 위험이 증가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암 유발이 안된다고는 하지 않았다

SV40에 감염된 원숭이 신장 세포의 모습.
세포 내 공포 형성(Vacuolating)이 매우 잘 진행된 것을 볼 수 있다.
출처: The Vacuolating Virus, S.V.40 (26128), 1960

베르니스 에디가 발견했던 암 유발 물질의 정체는 SV40 바이러스였고, 이 바이러스가 소아마비 백신에 섞여 수백만 명에게 접종되었다는 끔찍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과학계에 거대한 충격을 주었고, SV40은 순식간에 암 연구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도대체 이 작은 바이러스가 어떻게 멀쩡한 세포를 암세포로 만들 수 있는가?

세포의 운전대를 빼앗는 납치범, ‘Large T-antigen’

SV40이 암을 유발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Large T-antigen이라는 이름의 단백질이었다. 여기서 T종양(Tumor)을 뜻한다. 이 단백질은 SV40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한 뒤 자신의 베베꼬인 DNA를 풀어주는 기똥찬 녀석일 뿐이다. 이 녀석이 암을 유발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일 수 있다! 우리는 이것과 유사한 단백질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바로 Helicase다.

왼쪽이 `Large T antigen`이고 오른쪽이 인간의 `Helicase`다.
출처: RCSB PDB

DNA는 복제되기 위해서는 이중가닥단일가닥으로 풀어야만 하는데, 이 때 저 두 단백질이 활약하는 것이다. 좌측은 SV40 바이러스의 DNA에 특화 되어있는 구조이고 오른쪽은 인간의 동일한 기능을 하는 단백질이다. 둘 다 6개의 펩타이드가 묶여서 작동하는 것이 상당히 유사한 점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게 척추동물이 가지고 있는 p53 이라는 단백질과 묘하게 맞물리는 바람에 발암성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신의 장난이란 말인가! Large T antigen은 절대 암을 유발하려고 할 마음이 없었는데 말이다!

`p53`과 붙어있는 형태의 `Large T antigen`의 모습
출처: RCSB PDB (2H1L)

p53전사인자(Transcription factor)로 작동하는 단백질이다. 원래는 DNA에 붙어서 각종 단백질의 생산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기본적으로 널리 알려진 p53DNA에 붙어서 생산하는 단백질들은 대부분 DNA 수리와 연관이 있는데 특히나 p21이라는 단백질을 생산한다. 여기서 다시 p21이라는 단백질은 우리의 세포가 함부로 분열하지 않도록 하는 하나의 시스템을 관리하는 직접적인 관리자라고 할 수 있다. 자,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

  1. p53Large T antigen에 붙는다.
  2. p53이 원래 DNA에 붙어서 하던 역할이 중단된다.
  3. p53이 생산하게 유도하던 DNA 보호, 수리 단백질들과 p21이 생산되지 않는다.
  4. p21이 없으니 세포 분열이 멈추지 않는다.
  5. 세포 분열이 멈추지 않는다? 암 세포가 되었다.

이런 방식이다. 너무나 신기하지 않은가? 애초에 숙주세포였던 원숭이 신장 세포에서는 암 유발 따위는 전혀 하지 않던 바이러스가 다른 숙주에 들어오니까 암을 유발한다니?

p21과 Rb(retinoblastoma protein)과의 상호작용도 중요 기전으로 제시되지만 길어지니까 그건 패스하겠다.

이래서 이종감염이 위험한 겁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왜 원숭이 신장 세포에서는 암이 유발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바로 바이러스 증식이 끝까지 갔느냐 가지 않았느냐에 따른 차이이다. 무슨 소리냐고? 본래 바이러스라는 녀석들은 까탈스러워서 한번 숙주로 정한 세포가 있으면 웬만해서는 다른 종에서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다. 조류독감도 원래는 조류한테나 엄청 감염되지 인간 대상으로는 전염 확률이 급감한다. 원숭이 신장 세포SV40의 집인 것처럼 이것이 다른 종에는 잘 감염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이 이것을 접종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주사를 통해서 주입된 이 바이러스들은 극악의 확률을 뚫고 이종감염에 성공한다. 원래 자신의 타겟이 아닌 다른 놈의 집에 무단침입하는데 성공한다는 것이다.

근데 익숙하지가 않다. 남의 집이다. 바이러스는 눈여겨봤던 집에 무단침입하여 그 집 안에 있는 도구들을 이용해서 자가 복제를 시도하는데 남의 집에는 자신이 알고 있던 도구가 없다! 그 뜻은 자가 증식을 못 한다는 이야기다.

자연의 순리대로라면 SV40은 자신을 수백, 수천 카피 복제하여 세포를 찢어버리고 밖으로 방출된다. 그것이 섭리였는데 남의 집에서는 증식도 못하고 자신이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도록 세포가 찢어지지도 않는다. 그저 안에 가만히 있을 뿐이다. 와중에 어설프게 남의 집 도구를 써서 Large T antigen 만큼은 계속해서 생산한다. 그러면 앞서 설명했던 1~5 단계가 작동하는 것이다.

VP production이 일어나면 세포가 터지고 일반 세포는 감염도 안된다.
근데 감염이 되었다면 오른쪽처럼 특정 단백질은 발현되는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출처: SV40 large T antigen targets multiple cellular pathways to elicit cellular transformation, 2005

SV40이 남긴 뜻밖의 선물: 불멸의 세포와 암 치료의 서막

SV40 연구는 단순히 바이러스의 암 유발 원리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 연구는 현대 생명과학에 값을 매길 수 없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불멸화 된 세포주(Immortalized cell line)’ 다. 정상 세포는 실험실 환경에서 몇 번 분열하고 나면 노화되어 죽는다. 그래서 장기적인 연구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SV40Large T-antigen 유전자를 세포에 쏙 넣어주면, 세포가 죽지 않고 영원히 분열하는 ‘불멸’의 능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 cellosaurus라는 세포주에 대한 정보를 관리하는 사이트에서 확인해보면 SV40을 이용해 정상 세포를 불멸화한 세포주들이 4183개라는 것을 알 수 있다.6

또한 p53p21암 발생의 핵심 열쇠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대부분 SV40 연구 덕분이었다. 소아마비 백신 속 작은 불청객이, 역설적이게도 암 정복의 가장 중요한 문을 열어준 셈이다.

유사하게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인 HPVE6, E7이라는 단백질도 우리 세포의 핵심 방어 시스템인 p53Rb를 무력화시켜 암을 유발한다.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는 특이하게 miRNA를 사용하거나 LMP1라는 단백질이 마치 계속해서 활성화된 ECAR처럼 작동하여 미친듯이 증식하는 종양을 만든다. 이건 좀 종양이라고만 할 수 있긴 하지만 EBVB 세포에 침입하면 불멸화 시켜버려서 암 세포로 만들어버린다.

이처럼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 즉 종양 바이러스(Oncovirus)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포를 공격해 암을 일으킨다. 어떤 녀석은 직접 세포의 방어 시스템을 부수고(HPV, SV40), 어떤 녀석은 끊임없는 염증과 재생 과정에서 DNA 오류를 유발한다(HBV/HCV, 간염 바이러스).

그리고 이 모든 방식은 불멸화 세포주를 만드는데 사용될 수 있으며 이는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된다!

결론: 작은 바이러스가 열어준 거대한 세계

소아마비 백신 속 불청객으로 시작된 SV40의 이야기는 인류가 암이라는 거대한 산의 정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결정적인 지도를 그려줬다. 비록 SV40 자체가 인류의 암을 정복해주진 않았지만 이 작은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세포의 생명과 죽음, 그리고 통제 불능의 상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과학의 위대한 진보는 종종 이런 예측 불가능한 우연과 예상치 못한 발견에서 시작된다. SV40은 그 가장 극적인 예시이며, 이 작은 거인이 남긴 지식은 앞으로도 생명의 비밀을 풀고 질병을 정복하려는 인류의 여정에 계속해서 빛을 비춰줄 것이다.

근데 솔직히 에디 누님이 한 일은 진짜 왜 인정 못 받았던거냐… 이러니 백신 음모론이 퍼져도 난 할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