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포의 수명 타이머, 텔로미어를 늘리면 정말 오래 살 수 있을까?
세포는 영원히 살 수 있을까? 한 세기를 지배한 믿음
20세기 초, 과학계는 하나의 거대한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바로 “세포는 본질적으로 불멸한다” 는 생각이다. 그 당시에도 노화되는 세포라는 개념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것이 정설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그게 다 “세포는 불멸한다” 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믿음의 중심에는 노벨상 수상자인 알렉시스 카렐(Alexis Carrel) 과 다양한 연구자들의 연구 논문의 발표가 있었다. 카렐
은 1912년, 닭의 심장에서 떼어낸 세포 조각을 무려 34년 동안이나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불멸의 닭 심장 이야기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다양한 연구실에서도 Cell line
이라고 하는, 암 세포
에서 추출한 세포들이 무한하게 분열한다고 발표했으니 응당 “세포는 영원히 살 수 있으며, 노화와 죽음은 세포 자체의 운명이 아니라 주변 환경이나 배양 기술의 문제일 뿐이다” 라는 강력한 명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Cell line과 Cell strain: 당시에는 Cell line
이라는 용어와 Cell strain
이라는 용어를 엄격하게 구분했다. Cell line
은 보통 암 세포에서 유래하여 지속적으로 분열하고 접종(innoculation) 시에 악성 종양을 형성하는 세포를 지칭하는 말이었고, Cell strain
은 분열 한계가 있는 일반적인 세포를 지칭했다.1
물론 현대에서 그런 구분은 매우 희미해졌고 그냥 대부분 배양 세포는 Cell line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레너드 헤이플릭(Leonard Hayflick)
이라는 젊은 과학자는 이 정설에 의문을 품었다. 1960년대 초, 그는 다양한 인간 유래의 세포를 배양하면서 카렐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현상을 마주했다. 아무리 완벽한 환경을 제공하고 정성껏 배양해도 세포들은 약 50번 정도 분열하고 나면 어김없이 분열을 멈추고 죽어갔던 것이다. 비단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연구자들의 발표에서 “오랫동안 유지되는 세포주” 를 재현하는데 실패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특히 카렐
의 불멸하는 닭 심장근 세포는 그 누구도 1년을 넘겨서 배양하지 못 했다. 아니 도대체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말인가? 당시에 “세포의 노화와 죽음은 주변 환경이나 배양 기술의 문제이다.” 라는 인식이 팽배했으니 아마도 헤이플릭
은 본인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은 잘 만들어진 근거를 제시하면 되는 법. 그는 끈질긴 관찰을 이어갔다.
카렐의 ‘불멸 세포’는 사실 사기극이었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카렐의 실험은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 카렐
은 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할 때마다 ‘닭 배아 추출물(chick embryo extract)‘을 사용했는데 이 안에는 배아줄기세포
가 포함 되어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즉, 죽어가는 세포를 버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젊은 세포를 공급해준게 아니냐는 말이다. 사실은 한 마리의 닭에서 유지되어온 심장근이 아니라 여러 마리의 닭이 짬뽕된 키메라였을지 모른다.1

1961년, 레너드 헤이플릭
은 동료 폴 무어헤드(Paul Moorhead)
와 함께 이 발견을 세상에 알렸다.2 그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과학계에 퍼졌던 거대한 미신의 목숨을 끝장낸 것이다. 세포의 분열 횟수에는 항상 한계가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밝혀냈다. 분열을 할 때마다 분열 주기는 길어지고 세포 내부에 노폐물은 쌓이고 죽은 세포는 많아지면서 서서히 세포 크기가 커지다가 이내는 분열을 멈춰버리는 이 현상에는 그의 이름을 붙여 ‘헤이플릭 한계(Hayflick Limit)’ 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사건은 또 다시 엄청난 교훈을 남겨주는데 “노벨상 수상자라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다. 명심하자. 지금까지 노벨상 받은 사람 중에 틀린 말을 한 사람이 한 무더기다. 권위에 기대면 큰일난다.
폴 무어헤드
와 레너드 헤이플릭
이 내놓은 논문은 2025년 기준으로 11640
회 인용 되었고 다시, 1965년에 정리한 논문에서는 단독 저자로 8430
회 인용 되었다. 상식을 뒤집는 논문을 내고 인정 받다니 얼마나 짜릿할까!
그.. 텔로미어가 헤이플릭 한계 만드는거 아니에요?
지금은 대부분 상식으로 알고 있는 텔로미어
의 존재는 사실 헤이플릭 한계
보다 더 일찍 알고 있었다. 1938, 1939년 뮐러(Müller)
와 매클린톡(McClintock)
이 초파리를 대상으로 연구하면서 염색체 끝 부분은 뭔가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것에 텔로미어
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좀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만 있었을 뿐, 이게 짧아진다고는 알지 못했다. 텔로미어가 짧아진다는 것을 알아차린건 1967년 오카자키 레이지(Reiji Okazaki)
와 츠네코 오카자키(Tsuneko Okazaki)
부부가 오카자키 절편
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DNA가 복제될 때 막연히 복제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오카자키
는 그것이 아님을 밝혔다. DNA 복제에는 방향이 있을 뿐더러, DNA 복제는 짧은 단편
들을 만들어내고 추후에 이게 결합(ligation)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3
오카자키 절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사용한 실험 기법들을 보면 진짜 놀랍다. 방사능 표지와 DNA 분해 효소, 침강 기법 등등 시퀀싱 기술이 없는 그 당시 기술로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는 결과들을 끌어냈다. 이게 진짜 과학자 아니겠는가
최초로 이 텔로미어와 헤이플릭 한계를 연관 지은 사람은 알렉세이 올로브니코프(Alexey Matveyevich Olovnikov)
라는 러시아 학자다. 1971년에 그는 지금까지의 이해를 바탕으로 텔로미어가 짧아질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이것이 곧 헤이플릭 한계와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했다.4 해당 논문은 러시아어로 적혀있고 현재 온라인으로 공개되어있지 않지만 1973년 영문판으로도 출판 되었다.5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은 ‘말단 복제 문제(End-replication problem)‘라는 DNA 복제 과정의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DNA를 복제하는 효소(DNA 중합효소)
는 기찻길처럼 생긴 DNA 두 가닥 중 한 가닥을 따라 쭉 나아가며 새로운 가닥을 만드는데, 출발을 위해서는 프라이머(primer)
라는 작은 조각이 먼저 달라붙어야만 한다. 문제는 복제가 끝난 뒤 이 프라이머가 제거되고 나면, 그 자리가 빈 공간으로 남게 된다는 점이다. 염색체 중간이라면 다른 효소들이 이 공간을 메워주지만 염색체의 맨 끝부분은 이 빈 공간을 채울 방법이 없다. 놀랍게도 DNA 복제 과정은 이렇게나 불완전한 것이다. 결국 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염색체 끝부분의 유전 정보를 조금씩 잃어버리게 되고, 이것이 바로 텔로미어 단축의 원인이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는데 그게 왜 문제죠?
사실 텔로미어가 짧아지는게 세포의 노화와 직결된다는 것은 상당히 이상한 말이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는건 짧아지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텔로미어에 중요한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연필을 사용하는데 머리에 붙어있는 지우개가 닳는다고 해서 연필 자체가 못 쓰게 되는게 아닌 것과 같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든 말든 단백질 설계
를 담고 있는 유전 정보는 안전하다. 그런데도 그냥 세포가 분열을 멈춰버리는 시스템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존재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 시스템이 있을 뿐이니까. 좋다. 그렇다면 세포는 텔로미어가 짧아졌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리는 것일까?
세포가 가진 시스템에는 뭐든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존재 이유
를 밝히는 학문이 아니다. 무슨 현상
이 있고, 어떻게 작동하는가
를 알아내는 것이 과학이다. 존재 이유
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목적론적 오류
에 빠지게 된다. 의도와 목적이 있는 자연현상은 없듯이, 생물의 시스템도 의도와 목적이 있지는 않다. 그 기능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셸터린(Shelterin)’ 이라는 이름의 단백질 복합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셸터린은 평소 텔로미어 DNA에 단단히 결합하여, 마치 DNA의 끝이 부러진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위장’하는 보호자 역할을 한다. 세포의 DNA 손상 감시 시스템
이 염색체 끝을 진짜 손상 부위로 착각하고 불필요한 복구 작업을 벌이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하지만 텔로미어가 임계점 이하로 짧아지면, 셸터린 복합체가 더 이상 안정적으로 붙어있을 수 없게 된다. 보호자를 잃고 헐벗은 염색체 끝은 그대로 노출되고, 마침내 세포의 DNA 손상 감시 시스템(ATM, ATR 등)
에 의해 ‘심각한 손상’으로 인식된다. 이 신호는 세포 분열을 멈추게 하는 p53
과 같은 종양 억제 단백질
을 활성화시켜, 세포를 ‘세포 노화’ 상태로 이끈다.
세포는 눈이 없다. 가끔씩 DNA가 손상을 받아서 끊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손상된 중간 부분과 다른 염색체의 끝부분은 사실 구별 불가능하다. 이것을 구분짓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셸터린
같은 단백질이다.
‘노화의 원인은 텔로미어 단축’ 이라는 간결하고 강력한 공식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영생의 꿈, 혹은 암세포의 악몽
이 단순한 공식은 곧장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텔로미어가 짧아져서 늙는다면,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시키거나 늘리면 노화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반대의 경우: 텔로미어가 짧아진 생쥐의 운명 과학자들은 텔로머레이스를 만드는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제거한 ‘텔로머레이스 녹아웃 생물’을 통해 텔로미어 단축의 효과를 직접 확인했다. 그 결과 수명이 줄어들고 상처 회복이 느려지며 골수 부전과 같은 ‘조기 노화’ 현상을 보였다. 이는 텔로미어의 길이가 노화와 수명에 직접적인 원인이 됨을 명확히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6
이 대담한 아이디어는 수많은 과학자들을 자극했지만 동시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바로 ‘암(Cancer)’ 이다. 암세포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죽지 않는 것’, 즉 불멸성이다. 과학자들은 암세포가 텔로머레이스(Telomerase)
라는 효소를 다시 활성화시켜, 짧아지는 텔로미어를 계속해서 복구함으로써 헤이플릭 한계를 넘어 무한히 증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약 우리가 인위적으로 텔로미어를 늘린다면 노화를 막으려다 온몸에 암을 퍼뜨리는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암세포의 두 가지 생존술: 정교한 ‘3D 프린터’ vs 필사적인 ‘돌려막기’
물론 모든 암세포가 텔로머레이스라는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약 10~15%의 암세포는 ‘대체 텔로미어 연장(ALT, Alternative Lengthening of Telomeres)‘이라는 더 기묘하고 필사적인 방식을 사용한다.
텔로머레이스 방식:
텔로머레이스
는 자체 설계도(RNA 주형)를 가진 초정밀3D 프린터
와 같은거다. 이 프린터는TTAGGG
같은 반복되는염기서열의 벽돌
을 오차 없이 찍어내어 염색체 끝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우리의 생식세포도 이 방식을 사용한다.ALT 방식: 반면
ALT
는 그야말로 보고 배끼기다. 원래 DNA 손상을 수리하는 방식 중상동재조합
이라는 방식이 있는데 우리처럼동일한 염색체가 2개
인 녀석들이 쓰는 방식으로, 다른 염색체를 보고 자기 것을복사+붙여넣기
하는 것이다. 텔로미어는 모든 염색체의 말단에 모두 똑같은 구조로 만들어져있으니 보고 배낄 것들이 많다.
그래도 해보는 것이 과학의 묘미. 텔로미어를 늘려보자!

1990년대 후반, 과학자들은 헤이플릭 한계
에 도달한 정상 세포에 텔로머레이스
를 활성화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배양 세포에 hTRT
를 발현하도록 유도했고, 결과는 놀라웠다. 분열을 멈추고 늙어가던 세포들이 다시 왕성하게 분열을 시작하여 기존 세포보다 20회는 더 분열했던 것이다!7 이 실험은 텔로미어 단축이 세포 노화의 직접적인 원인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동시에 과학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수명이 연장된 세포들은 암세포의 또 다른 특징인 악성 변형
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금 더 분열할 능력만 얻었을 뿐, 암세포처럼 제멋대로 자라지 않았다.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Ras
등)를 주입하자, 이 ‘수명 연장 세포’들은 즉시 분열을 멈추고 노화 상태로 들어가거나 스스로 사멸했다. 즉, p53
같은 암 억제 시스템
이 여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과학계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불멸성
은 암으로 가는 여러 단계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암은 아니라는 것. 진짜 암이 되기 위해서는 불멸성
을 얻는 것과 동시에, 우리 몸의 정교한 암 억제 시스템
까지 모두 망가뜨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텔로미어 조작은 한동안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기술로 여겨지게 되었다.
상식을 뒤엎다: ‘긴 텔로미어’ 생쥐, 더 건강하고 오래 살다
마리아 블라스코(Maria Blasco) 연구팀은 이번에는 동물 단위에서 텔로미어 연장을 시도 했다. 이들은 유전자를 직접 조작하는 대신 배아줄기세포
를 배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텔로미어가 길어지는 현상을 이용했다. 이들은 배양 시간을 조절하여 초장 텔로미어
를 가진 배아줄기세포를 만들고, 이 세포로 생쥐를 복제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세포가 정상보다 훨씬 긴 텔로미어를 가진 생쥐가 탄생한 것이다.8
결과는 놀라웠다. 이 생쥐들은 보통의 생쥐보다 평균 수명이 13% 더 길었다. 단순히 오래 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더 날씬했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았으며, 인슐린 저항성도 개선되는 등 훨씬 건강한 노년을 보냈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암 발생률’ 이었다. 텔로미어 연장이 암을 유발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 생쥐들은 오히려 암 발생률이 더 낮았다. 연구팀은 긴 텔로미어가 염색체 자체를 더 안정적으로 만들어 DNA 손상과 돌연변이를 줄였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이 연구는 ‘텔로미어 연장은 곧 수명 연장 및 건강 증진’ 이라는 공식을 세상에 증명해 보인 것이다.
유전자 치료로도 수명을 늘리다 사실 블라스코 연구팀은 2012년에도 텔로머레이스를 만드는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실어 1살, 2살 먹은 늙은 생쥐에게 주입하는 ‘유전자 치료’를 시도한 적이 있다. 결과는 마찬가지로 성공적이었다. 1살 생쥐는 24%, 2살 생쥐는 13%나 수명이 연장되었다. 이는 이미 늙은 개체에게도 텔로미어 치료가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연구다.9
이 놀라운 결과들은 포유류의 노화에서 텔로미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런데 이 광활하고 다양한 생명체의 바다에서 정말 모두가 이 텔로미어로 인한 한계를 맞딱뜨리고 있는 것일까?
헤이플릭 한계
와텔로미어 단축
은 마치 텔로미어가 노화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저주가 되었다!
생명의 다채로운 노화 전략
안타깝게도 생명의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생명체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지금부터 텔로미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생명체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텔로미어 시계가 없는 곤충의 노화
곤충의 세계는 우리의 상식과 크게 다르다. 심지어는 곤충 속에서도 엄청나게 다른 텔로미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파리
와 모기
는 텔로미어 처럼 보이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텔로미어가 아니다. 파리는 레트로트랜스포존
이라고 하는 염색체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기이한 구조가 그들의 텔로미어 역할을 대신하고 있고 모기는 위성 반복(satellite repeats) 기반의 재조합으로 길이를 유지한다. 심지어 파리랑 모기 같은 녀석들은 텔로머레이스
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충의 세포 대부분은 평생 동안 텔로미어 길이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즉, 텔로미어 단축이라는 시한폭탄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곤충도 엄연히 늙고 죽는다. 그들의 노화는 텔로미어 때문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쌓이는 ‘활성산소’ 로 인한 단백질과 DNA의 손상, 그리고 에너지 대사 과정에서 생기는 ‘노폐물’ 때문으로 이해되고 있다. 사실 이런 손상은 포유류 세포에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즉, 포유류의 노화는 '텔로미어 단축'
과 '기타 세포 손상'
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셈이다.
수천 년을 버티는 식물의 비밀: 분열조직의 지혜
그렇다면 수천 년을 사는 나무는 어떨까? 동물과 달리 한자리에 고정되어 태양의 자외선과 각종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식물은 어떻게 노화를 이겨내는 것처럼 보일까?

그 핵심에는 ‘분열조직(meristem)’ 이라는 경이로운 줄기세포 시스템이 있다. 물론 우리도 줄기세포가 있지만 동물의 줄기세포는 분열하면서 노화가 축적되지만 식물의 분열조직은 특이하게도 거의 불멸에 가까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 비밀은 여러 겹의 정교한 보호 장치에 있다. 분열조직 중심부에는 분열이 극도로 느린 ‘정지 중심(Quiescent Center)’ 이라는 세포 그룹이 존재한다. 이들은 일종의 ‘줄기세포의 원본’으로, 평소에는 활동을 최소화하여 DNA 복제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돌연변이 위험 자체를 최소화 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변 조직이 손상될 때만 분열하여 새로운 줄기세포를 공급하는, 매우 효율적인 백업 시스템인 셈이다. 또한 식물 줄기세포는 동물보다 훨씬 강력하고 민감한 DNA 손상 복구 시스템과 후성유전학적(epigenetic) 상태를 완벽하게 유지하는 통제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어, 노화의 근본적인 원인을 원천 차단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10
정지된 세포는 인간도 가지고 있다! 난자가 대표적인 정지 세포이다. 분열을 중간에 멈춰놓았다가 매 생리마다 분열을 끝마치고 나오게 된다. 덕분에 정자와 달리 분열로 인한 손상에는 강한 면모를 보인다. 근데 생리는 왜 통증을 동반하는거야 대체…
효모는 짱짱해요: “나는 늙지만, 내 자식은 언제나 새롭게”
효모는 매우 특이한 개체다. 핵을 가지고 있는 진핵생물이면서 단세포 생물이다. 단세포 생물이라 함은 이것이 분열을 하는 것 자체가 바로 번식
이라는 뜻이다. 만약 이 효모가 헤이플릭 한계
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세대를 거듭할 수 있는걸까?

효모는 분열할 때 손상된 단백질 덩어리, 기능이 저하된 미토콘드리아, 노화와 관련된 특정 인자 등 세포 내의 ‘쓰레기’들을 어미 세포인 자신이 모두 떠안는다. 그리고 갓 태어나는 딸 세포에게는 깨끗하고 건강한 세포질만을 물려준다. 세대는 계속해서 젊음을 유지하지만, 그 세대를 만들어낸 개체는 모든 손상을 감수하며 늙어가는, 이른바 ‘비대칭 노화(Asymmetric Aging)’ 라는 놀라운 전략이다.11 이것을 통해서 일반적인 환경에서 유래하는 노화의 위험은 어미만이 가진다. 결정적으로 효모는 텔로머레이즈
가 항상 활성화 되어있어서 텔로미어의 길이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결론: 노화라는 거대한 퍼즐, 텔로미어는 시작일 뿐
텔로미어
의 이야기는 우리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세포 분열의 횟수를 세는 영리한 타이머이자, 그 길이를 늘렸을 때 생쥐의 수명이 건강하게 연장되는 모습은 마치 우리가 노화라는 거대한 숙명의 첫 실마리를 풀어낸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는 이리보고 저리봐도 다들 텔로미어와 노화를 연관지으니 마치 텔로미어가 노화의 절대적인 원인이라고 여겨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생명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복잡하다. 텔로미어 시계 없이도 자신만의 노화 과정을 겪는 곤충, 사실상 불멸에 가까운 줄기세포 시스템으로 수천 년을 버티는 식물,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기꺼이 늙어가는 효모의 지혜는 ‘텔로미어 단축 = 노화’ 라는 공식이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법칙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준다.
결국 우리 포유류에게 텔로미어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지 이것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텔로미어를 늘리는 기술은 분명 노화 연구의 핵심적인 열쇠이지만, 그것이 불로장생의 문을 여는 만능키는 아닐 것이다.
노화는 활성산소로 인한 손상, 후성유전학적 변화, 단백질 항상성 붕괴 등 수많은 조각들이 얽혀 만들어진 거대한 퍼즐과 같다. 텔로미어는 그 퍼즐에서 눈에 띄는 한 조각에 불과하다. 이 조각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제 막 노화라는 전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을 뿐이다.
L.Hayflick. (1965) The limited in vitro lifetime of human diploid cell strains ↩︎ ↩︎
L.Hayflick and P.S. Moorhead. (1961) The serial cultivation of human diploid cell strains ↩︎
Reiji Okazaki, Tuneko Okazaki et al. (1967) Mechanism of DNA chain growth, I. Possible discontinuity and unusual secondary structure of newly synthesized chains ↩︎
A.M. Olovnikov. (1971) Principle of marginotomy in template synthesis of polynucleotides ↩︎
A.M. Olovnikov. (1973) A theory of marginotomy: The incomplete copying of template margin in enzymic synthesis of polynucleotides and biological significance of the phenomenon ↩︎
Francesca Rossiello et al. (2022) Telomere dysfunction in ageing and age-related diseases ↩︎
Andrea G. Bodnar et al. (1998) Extension of Life-Span by Introduction of Telomerase into Normal Human Cells ↩︎
Miguel A. Muñoz-Lorente et al. (2019) Mice with hyper-long telomeres show less metabolic aging and longer lifespans ↩︎
Bruno Bernardes de Jesus et al. (2012) Telomerase gene therapy in adult and old mice delays aging and increases longevity without increasing cancer ↩︎
Darya Volkava and Karel Riha (2024) Growing old while staying young: The unique mechanisms that defy aging in plants ↩︎
Kiersten A Henderson et al. (2014) Mother-daughter asymmetry of pH underlies aging and rejuvenation in yeast ↩︎